오늘은 대한민국 전 변호사 전 서울시장이었던 박원순 에 대해 알아보자
박원순
출생 1956년 3월 26일 원숭이띠
사망 2020년 7월 9일
학력사항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사회계열 중퇴
단국대학교 사학 학사
경력사항
2006년 이하 생략
2006년
2011년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2011년
2014년 제35대 서울특별시 시장
2011년
2015년 한국상하수도협회 시장
2014년
2020년 제36·37대 서울특별시 시장
수상내역
2007년이하 생략
2007년 제21회 단재상 학술부문
2009년 제15회 불교인권상
2014년 세계도시 전자전부평가 특별공로상 서울특별시 수상
2014년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선거공약분야 최우수상
2016년 예테보리 지속가능발전상
1980년 사법시험 합격 후 검사로 임용됐지만 6개월 만에 사표를 쓰고 그로부터 6개월 뒤에 퇴임했다. '사람 잡아넣는 일'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후 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한 박원순은 1980년대 부천 경찰서 성고문 사건과 1990년대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등 대한민국 여성운동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도맡아 변호했다. 특히 서울대 성희롱 사건은 6년간에 걸친 법적 투쟁 끝에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직장 내 성희롱 소송으로 위법성을 이끌어 낸 역사적 안 변론이며, 대한민국 여성운동 역사에서 가장 큰 획을 그은 사건으로 언급된다.
여성전범법정 운동에서 대한민국 측 검사로 참여하면서 일본군 위안부문제에 대한 일본 일왕의 처벌과 배상을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그는 여성인권을 대표하는 인권변호사로서 명망을 쌓았고 여성단체로부터 대한민국 여성운동에서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라는 찬사를 받아왔다. 또한 당시 마로니에 립싱크사건을 변호하여 당시 가요계에서 최초로 저작권의 개념과 2차 저작물과 편곡자의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받아내기도 했다. 후에 이는 저작권법 개정에 배경이 된다.
1994년 박원순은 참여연대를 설립, 초대 사무처장을 맡으며 시민운동계에 투신했다. 그는 참여연대를 통해 '압박 시민단체' 모델을 대한민국에 태동시키고 장착시켰다. 박원순은 참여연대를 통해 낙천·낙선 운동, 재벌개혁을 위한 소액주주 권리 찾기 운동, 검찰, 법원 개혁 등 사법개혁운동 등을 추진했다. 그러나 참여연대의 낙선운동은 시민단체의 지나친 정치 개입으로 논란을 낳기도 했다. 이에 대해 "현존하는 법만 지켜야 한다는 것은 공안검사의 논리와 다름없다" 며 법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법이 지켜져야 한다면 시대착오적인 법률이 언제까지나 우리를 속박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악법이 법일 수는 없다" 말하며 악법이라 할 수 있는 현생선거법을 무시해도 상관없다고 주장하며 낙선운동을 더욱 강력하게 추진했다. 하지만 참여연대의 낙선운동은 결국 대법원에 의해 선거법 위반 확정 판결이 내려졌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기간에는 돌연 정부 비판 활동을 중단하고 사회 활동에 주력했다. 재벌 개혁 추진과 관련 정부와 열린우리당의 행보를 지원했고, 위법 논란에도 불구하고 (야당) 낙선 운동을 벌였다. 2001년 '아름다운 재단'과 2002년 '아름다운 가게',2006년 '희망재작소'를 설립해 노무현 정부가 끝나는 2008년까지 박원순은 대정부 투쟁을 거의 하지 않고 사회적 활동에만 주력했다. 그 당시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아름다운재단과 네이버와 협력해 기부사이트 해피빈을 출범 및 성공적으로 장착시키기도 했다.
한편 반미운동에 활발히 나섰다. 2002년 효순이 미선이 사건 때에는 SOFA 개정을 외치며 촛불집회를 주도했다. 이 반미 투쟁은 그가 노무현 정부에 반대한 유일한 활동이었다. 이 시기 민주당계 정당 등에서 정치입문에 대한 요청을 끊임없이 받아왔으나 박원순은 이를 거절하고 사회운동에만 주력했다. 당시 사회활동을 위해 박원순은 인권변호사 시절 매입했던 자택까지 처분하면서 32억원 이상을 기부했다. 월급도 대부분 사회에 환원하는 활동을 해서 이로 인해 후에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사망할 때까지도 항상 4~6억 원 빚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기부활동으로 2006년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직후부터 다시 강경 대정부 투쟁에 나섰다. 이미 선거 때부터 이명박 정부의 대운하 공약을 맹비난했고,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지 몇 개월이 채 되지도 않은 시점에서 나라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던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를 주도했다. 당시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사무실이 참여연대 1층에 마련됐다. 천안함이 침몰하자 그는 정부의 대북 강경책이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며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장병을 죽였다고 주장하며 정부를 맹비난했다.
2010년에는 결식 제로운동을 펼치며 무상급식 실시 문제로 오세훈 서울시장과 극한 대립하고 있던 서울시의회를 지원했다. 민주당의 저지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 오세훈 시장은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주민투표를 실시했으나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 주민투표 투표율 미달로 개표조차 못했다. 오세훈은 약속대로 서울시장직을 자진사퇴했다. 박원순은 오세훈의 사퇴로 공석이 된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해 지지율이 5%에 머물려 사실상 당선 가능성이 없었던 군소 후보 중 한 명이었지만 당시 유력 주자였던 안철수가 박원순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자진 사퇴하자 안철수 지지자들의 표를 대거 흡수해 제1야당 민주당과 단일화해 야권단일후보로 서울시장에 당선되는 대이변을 연출했다.
서울시장 집권 기간 동안 개발과 토목 공사를 극도로 싫어하며 '반토막 시장'이라 불렸다. 박원순 시장은 서울시의 재건축과 재개발을 극도로 제한하며 대신 도시재생 정책을 내세웠다. 재개발을 업격히 규제하는 상황에서 집값이 치솟으며 비판이 쏟아지자 2018년 박원순은 도로와 주차장 위에 공공임대주택을 건설해 집값을 잡겠다고 발표했지만 여론은 물론이고 언론과 전문가들로부터 숱한 비난을 들었다. 하지만 이런 비난에도 불구하고 2019년 8월 북부간선도로 위에 청년과 신혼부부를 위한 공공아파트를 지어 2025년까지 입주시키겠다는 계획까지 발표했지만 결국 무산되었다. 그나마 박원순 시장 재임 기간 동안 추진된 몇 안 되는 인프라 사업조차 과거 본인이 그토록 비판하던 민자로 추진된 경우가 허다했다. 그리해 개통된 서부간선하도로, 신월여의지하도로 등은 시내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료도로로 개통되어 통행료를 받고 있다. 설살가상으로 안전속도 5030 정책을 앞장서서 추진해 서울시내 차량 제한속도를 시속 60km에서 시속 50km로 낮추어 서울시의 교통난이 갈수록 심해진다는 논란을 받았다.
서울시장이 된 이후 박원순은 이명박 정부 및 박근혜에 대해 맹령한 공격을 아끼지 않았다. 재개발, 재건축, 청년수당, 천안함, 메르스, 사드등 수많은 현안에서 사사건건 정부 정책을 비난했다. 국감, 관훈클럽 등에서 정부에 대한 맹비난을 쏟아냈다. 서울시와 직접 관련이 없는 정부 시책에 관해서도 내내 사사건건 반대해 왔으나 2017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이런 행동을 완전히 멈췄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야당을 공격했다. 박근혜 국정농단 사태에 책임 있는 야당이 감히 남 탓을 한다며 야당의 비난을 원천봉쇄로 뭉갰다. 물론 당시 국정농단 사태의 영향으로 야당의 지지율이 박살이난 상황이라 박원순에게 큰 영향은 없었다. 사망 직적인 2020년에는 코로나 팬데믹을 맞아 서울시와 정부의 과도한 추경과 나라 빚에 대한 야당의 비판이 있자 평소에 맹비난한던 미국과 일본의 채무비율을 들며 반박했다.
그러나 2020년 7월 8일 박원순 시장의 전직 비서가 그를 성추행혐의로 고소했고 성추행 가해자로 피소당한 다음 날인 7월 9일 실종되어 북악산 숙정문 부근에서 사망했다. 사인은 자살로 결론지어졌다. 이 사건은 박원순 시장 본인의 사망으로 공소권 없음 처리되었지만 국가인권위원회와 법원에서는 공식적으로 박원순의 성폭력 범죄 사실을 인정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초의 무소속 민선 서울시장으로 당선되어 최초로 3선 서울시장이라는 기록을 달성했으나 최초로 성범죄 가해자로 피소가 된 서울시장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기록도 남겼다.
박원순 56년생 원숭이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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