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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수 프로필 나이 학력 고향 논란 근황

큰손강선생 2024. 4. 27. 13:17

오늘은 대한민국 축구 선수 출신 해설, 방송인, 유튜버 이천수 프로필에 대해 알아보자

 

 

이천수 앞모습

이천수

1981년 7월 9일 닭띠

경기도 김포군 계양면 출생

학력

부평초등학교

부평동중학교

부평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중퇴

경력

2000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2002-2003 울산 현대 축구단

2002 제17회 한일 월드컵 국가대표

2003-2004 제14회 부산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국가대표

2003

2004 레알 소시에다드(스페인)

2004 제28회 아테네 올림픽 남자 축구 국가대표

2004-2005 CD 누만시아(스페인)

2005-2007 울산 현대 축구단

2006 제18회 독일 월드컵 국가대표

2006 제15회 도하 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국가대표

2007 AFC 아시안컵 국가대표

2007-2008 폐예노르트 로테르담(네덜란드)

2008-2009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9-2010 월 나스르(사우디아라비아)

2013-2015 인천 유나이티드 FC

2018 JTBC 축구 해설위원

2021 대한축구협회 사회공헌위원장

 

청소년 대표 시절 최태욱과 함께 투톱으로 뛰며 당시 한국 축구계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올랐다. 작은 체구에 뛰어난 스피드를 가졌고 특히 공 잡고 방향을 전환하면서 순간적으로 가속 붙이는 능력이 좋았다. 전성기였던 2002년 월드컵 당시 차두리만큼 빠르고 박지성만큼 많이 뛴다는 평가까지 받았을 정도다. 거기에 발재간, 정교한 크로스와 킥 능력 등으로 국가대표 경기에서 많은 활약을 펼쳤다. 다만 멘탈 문제와 자기 관리 소홀로 재능을 만개하지 못한 케이스

 

공격 포지션은 대부분 소화했지만 가장 파괴적이던 위치는 처진 스트라이커, 이후 국가대표에서는 작은 키로 인해 최전방 공격수보다는 주로 측면 공격수로 뛰게 된다. 고종수, 나카무라 슌스케와 더불어 아시아 최고 데드볼 스페셜리스트라 할 만큼 정지된 상태에서 킥 능력은 세게적이지만 러닝 크로스의 성공률은 생각보다 평범하다. 또 국가대표 무대에서 시원하게 돌파는 모습이 별로 안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천수가 한때 박지성과 비교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이천수의 스피드나 가속력, 방향전환 능력이 국가대표 수비수들을 상대로 상당한 우위를 가져가지 못했던 것은 맞다. 하지만 분명 상당한 위협을 가할 정도는 됐다. 그런데 이천수 역시 박지성처럼 투쟁심이 엄청나서 활동량이 비록 박지성만큼은 아니라 하더라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활동량도 좋은데 공 없을 때 움직임가지 좋고 성격 때문인지 좋을 때는 정말 과감하고 저돌적이라서 침투능력이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알다시피 킥력도 상당했다. 박지성과 이천수가 동시에 가동되는 경우 둘 다 공 없을 때 움직임과 침투능력, 활동량과 투쟁심이 강하기 때문에 상대 입장에서 대처하기 난처하고 휘둘릴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과 골 욕심으로 말도 많은데 PK나 골을 넣을 수 있는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어낸 상황에서 전담 키커를 무시하고 자신이 공을 차려는 경우가 빈번하다. 프리킥의 경우 욕심을 내는 편이나 자신보다 잘 찬다고 인정하는 선수라면 굳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지만 이천수의 킥 능력은 아시아 원톱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었고 이을용, 고종수 등 톱클래스 왼발잡이 키커들을 제외하면 당시 국내 선수 중 이천수만큼 프리킥을 잘 차는 선수가 손에 꼽을 만큼 적었기에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다. PK의 경우 한중일 챔피언 대결이었던 A3 챔피언스컵 2006년 대회 도쿄에서 실축하고 나선 다시는 차지 않겠다고 말했다. 여담으로 울산 현대는 그 경기에선 PK 실축으로 J리그 제프에게 2-3으로 패했지만 다음 경기인 도쿄에서 니시노 아키라의 감바 오사카 전에서 감기몸살로 인해 후반에 교체로 들어온 이천수가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6-0으로 대승리하고 우승했다.

 

두 번의 유럽 진출은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두 번의 울산현대시절의 이천수는 아시아 최고의 선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고 특히 유럽 복귀 후 시즌의 절반을 손해봤음에도 뛰고 MVP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만들기도 했다. 멘탈적으로도 무시무시한 선수였는데 사건 사고에 자주 연되는 악영향도 있지만 그 똑같은 멘탈이 필드 위에서는 흔히 전설로 얘기되는 파올로 말디니 뒤통수 후려치기와 같이 스포츠 맨 정신에 어긋나 해외에서 많은 비난을 받은 행위도 있었지만 2002 월드컵 미국전에서 PK를 자청하던 모습 혹은 2006 월드컵 스위스전에서 투혼과 눈물처럼 국내 국대 팬들에게는 긍정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박찬대, 송영길등 더불어민주당 후보들의 유세에 참가해 그들을 도왔다. 2024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원희룡 후원회장을 맡게 됐다. 계산동이 고향 같은 곳이라고 밝히며 선거 유세 마지막 날까지 원희룡과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이 기간 동안 TV 출연도 자제한다. 원희룡과의 인연은 원희룡이 제주도지사시절 제주 유소년 축구팀을 논의하며 첫 인연을 맺었다고, 지지 정당을 바꾼 데에 관해 정치색은 없다고 주장했다. 선거 당일날 상황실에서도 원희룡 옆에 있는 것이 포착됐다.

 

이천수 81년생 닭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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