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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두리 프로필 나이 학력 고향 가족 근황 논란

큰손강선생 2024. 5. 27. 17:01

오늘은 내연 문제로 고소전에 휘말린 차두리 프로필에 대해 알아보자

 

 

차두리 앞모습

차두리

1980년 7월 25일 원숭이띠

독일 헤센 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키 181cm

가족

아버지 차범근

누나 차하나

동생 차세찌, 아내 한채아

학력

양정초등학교

현대중학교

배재중학교

배재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 학사

 

차범근의 1녀 2남 중 둘째이자 장남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 잠시 스코티시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약한 뒤 2013년 K리그 클래식의 FC 서울로 이적했다. 2015년 10월 31일 팀의 FA컵 우승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은퇴식은 11월 7일 홈 수원전에서 치렀다.

 

현역 시절 차두리 하면 피지컬과 몸싸움, 스피드가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다. 유럽과 한국에서 뛰는 동안 리그에서나 국가대표팀에서나 어떤 선수를 만나더라도 압도적인 몸싸움을 보여준 덕분에 차미네이터, 차이콘, 두리케라톱스, 차이언맨, 차두라리스크, 폭주기관차, 인간흉기, 인간 수류탄, 발업 질럿, 차드리로이드 등의 수많은 별명이 따라다녔다. 그중에서도 현재는 역시 차미네이터란 별명이 가장 대표적으로 기억되고 있다.

 

차두리의 피지컬은 당시 국가대툐핌 동료들도 치를 떨 정도였는데 오죽하면 2002 월드컵 기간에 상대 선수와의 충돌 대비 훈련 도중 이영표가 차두리에게 부딪혀 부상을 입고 조별예선 2경기에 결장한 적도 있었고 수비 연습을 같이 해주던 정해성 코치는 차두리와 충돌한 직후 갈비뼈가 부러졌다고 한다. 이에 대해 히딩크는 차두리에게 오히려 잘했다며 윙크를 날렸다는데, 이 정도의 힘과 투지라면 외국의 거구들도 나가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지성, 안정환, 이을용도 공통적으로 차두리랑은 부딪히는 게 아니라 피해야 된다고 말한 바 있다. 2023년 김민재도 차두리와 조우해 자기가 안된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실제 차두리는 아시아 축구 역사상 최고 수준의 피지컬과 무시무시한 스피드, 가공할 순간돌파력을 갖춘 선수였다. 2002 월드컵 히딩크로 선수들 중 30m와 100m 모두 가장 빠른 속도로 주파했다고 한다. 측정된 기록으로는 30m 기록은 3.8호, 100m 기록은 11.2초, 그 외 50m와 125m도 1위였다고 한다. 당시 차두리의 최고 속도는 대력 36km/h 안팎으로 추정된다. 이런 단거리, 장거리 가리지 않는 뛰어난 스피드는 몸싸움과 결합해 차두리 특유의 직선적인 돌파력으로 나타났고, 특히 달리는 거리가 길 수밖에 없는 윙백/풀백 시절 돋보이게 된다.

 

몸싸움 역시 빌고 은퇴 직전이긴 했지만 독일 최강의 하드웨어로 손꼽히던 슈테판 에펜베르크가 리그 경기에서 차두리를 상대하다가 벌렁 나자빠질 정도였다. 그야말로 신체 능력은 가히 월드 클래스, 하지만 기본기가 떨어져서 어느 순간 공과 따로 놀거나 경기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해 위험한 장면을 연출하는 문제가 종종 있었다. 결국 이 문제 때문에 처음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지만 둔탁한 볼터치에 결정력이 좋지 않아서 윙 포워드, 윙어로 점점 내려가다 결국 2000년대 중후반 풀백/윙백으로 전향한다.

 

풀백으로 만년인 2010년대 중반까지도 대기만성한 걸 생각하면 좀 더 일찍 포메이션 전환하지 못한게 아쉬운 부분인데 2002년 당시 히딩크 감독도 차두리에게 윙백 전향을 권유한 바 있기에 더 아쉬운 부분이다. 이땐 아버지 포지션에서 성공해야 된다는 생각도 있어서였는지 차두리가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다 2006~07 시즌 1.FSV 마인츠 05에서 뛰면서 위르겐 클롭 감독의 권유로 수비수로 전향한 후 그의 진가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다. 히딩크, 클롭 두 명장이 모두 풀백을 권유한 거 보면 차두리 특징을 잘 캐치한 모양. 그리고 그들의 안목이 틀리지 않아 수비수로 전향한 뒤 차두리는 타고난 철벽같은 몸과 엄청난 순간 가속으로 주포지션인 라이트백뿐만 아니라 센터백 자리도 필요할 땐 가담하는 엄청난 가능성을 보여줬다.

 

포져신 변경을 선수 커리어 초기에 했다면 안정적인 수비와 적극적인 공격가담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은 선수 수준으로 성장했을지 모를 일이엇지만 역시 너무 늦은 나이가 문제, 분데스리가를 그만두고 FC 서울로 이적해 K리그 무대를 밟으며 계속 좋은 활약을 보여주는 등 입지를 다지다가 2010년대 중반 은퇴 직전 올라탄 슈틸리케호에서 제대로 포텐이 터지게 되어 측면파괴자로서 그야말로 눈부신 활약을 하여 박수칠 때 떠난다는 말을 제대로 증명하고 떠나게 됐다. 하드웨어가 워낙 좋다 보니 대표팀에 부임하는 감독들이 내외국인을 막론하고 차두리의 유혹에서 벗어나질 못했는데 처음부터 수비수로 뛰었다면 송종국 부진 이후 2000년대 중후반 내내 대표팀의 고질병이었뎐 라이브백 문제는 진작 해결되었을 것이다.

 

 

내연 문제 고소전 논란

2024년 5월 27일 내연 문제로 고소전에 휘말렸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차두리는 내연녀 중 한 명인 A 씨를 사생활 폭로 등으로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하며 고소했다. 차두리는 2008년 12월 현재 배우자와 결혼 후 현재까지 법적 혼인 상태이다.

 

차두리는 A 씨를 '몇 차례 만남을 가진 사이' 라고 설명했다. 그런 A 씨가 사생활 폭로 등의 명예훼손을 입혔다는 것이 차두리의 입장이다. 경기 용인 서부경찰서에는 B 씨가 A 씨에 대한 고소장을 A 씨가 SNS에 사진, 게시글 등을 올림으로써 명예훼손 및 스토킹 행위를 가했다고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A 차 씨와 교제하던 중 차두리가 B 씨를 만난 사실을 알게 돼 이 문제로 갈등을 빚은 차두리가 자신을 고소했다는 입장이다.

 

A 씨에 따르면 2021년 8월 SNS로 A 씨에게 먼저 접근한 차두리가 지난해 5월 B씨 존재를 A 씨에게 알렸다. 이에 A 씨는 차 씨에게 이별을 통보했지만 차두리가 지속적으로 연락했고 지난해 11월에는 차 씨가 자신과 교제하기 전부터 B 씨를 수년동안 만나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피고소인인 A 씨를 소환해 자세한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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