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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욱 의원 프로필 나이 학력 고향 근황

큰손강선생 2023. 11. 18. 13:24

오늘은 김종민, 윤영찬, 조응천 의원과 함께 원칙과 상식이라는 모임을 만든 비명계 한 사람 이원옥 알아보자

 

 

이원욱 앞모습

이원욱

1962년 3월 20일 호랑이띠

충청남도 보령군 출생

학력

미아초등학교

보성중학교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법학

경력사항

더불어민주당 제3정책조정위원회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제21대 국회의원(경기 화성시을/더불어민주당)

제21대 국회 전반기 정무위원회 위원

제21대 국회 전반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전략공천위원회 위원장

 

1962년 3월 20일 충청남도 보령군에서 태어났다. 다만 실제 살았던 곳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길음동이었다. 아버지가 베트남에서 미군 하역 노동자로 일한 돈을 사기로 다 잃어버린 후에 가난한 집에서 어렵게 자랐다고 한다. 그의 중고등학교 시절은 서울은행 수위로 일하던 아버지의 급여로 빠듯한 살림살이를 꾸려 나가야 했기에 과외나 학원은 꿈도 못 꾸었지만 초, 중, 고를 거치며 한 번의 지각이나 결석 없이 12년간 개근하며 받은 개근상에서 보듯 성실하게 최선을 다한 시절이었다고 한다. 그 덕분인지 1982년 고려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를 졸업 후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입학할 수 있었다.

 

고대 법대 입학 후 처음에는 법관을 꿈꾸었지만 어느날 학생회관 계단에서 광주민주화항쟁의 진상규명과 군부독재타도를 부르짖는 학생들의 데모 현장을 처음 보고, 거기서 어느 백골단이 한 여학생의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가는 것을 목격했다. 그날 주머니를 뒤져 소주 몇 병을 사들고 텅 빈 교정에 다시 들어와 밤새 마시고 토하고 울고 했다. 그리고 도저히 고시생의 길을 걸을 수 없어 운동권에 띄어 들게 됐다. 3학년 때인 1984년 고려대학교 법학과 학생회장을 맡으며 군부정권 치하에서 열지 못하고 있던 법대의 전통적인 행사인 형사모의재판을 부활시켰고, 국내 대학 최초로 '모의헌법재판'을 개최했다. 또 법과대학 '정의의 광장'을 창간하고, 공법학회, 사법학회 등 법학과의 사회참여적인 모임 활성화를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1985년 11월 민주정의당 중앙정치연수원 점거농성 사건으로 구속되어 징역 3년형 선고받아 목포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형기를 정반 정도 채운 후 1987년 6.29선언 이후 특별사면으로 출소했다. 1987년에 출소한 후에는 1996년까지 선반공 등으로 일했다. 그러다가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한 후, 1998년에 공채에 합격하면서 당직자로 근무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당직자로는 새천년민주당, 그리고 새천년민주당 분당 당시에는 열린 우리당에서 일했고, 다시 열린우리당이 다시 통합될 때까지 계속 당직자로 일했다. 201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신설된 성동구 갑 선거구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중앙당이 경선 방침을 뒤엎고 최재천 변호사를 단수공천하면서 출마가 좌절된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는 민주당이 멸망한 선거였다. 패배가 너무 뻔히 보였던 선거였기 때문에 당시 한나라당 현역의원이 있어 한나라당이 유리한 곳으로 평가받던 화성시에는 민주당에서 아무도 나가려하지 않았다. 이때 원래 종로에서 출마한 손학규 캠프에 합류하기로 했던 이원욱은 자원해서 화성시 을에 출마를 선언했다. 살아오면서 아무런 연고도 없던 지역에 출마한 결과는 당연히 보기 좋게 낙선했다. 하지만 여기서 주저 않지 않고 화성시 을 지역위원장을 계속 맡아 본격적으로 지역구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됐다.

 

그런데 이 화성시 을 지역은 그 후 동탄신도시의 완성으로 인해 점차 젊은 유권자들이 늘어나는 곳으로 변모했다. 18대 총선 당시 누구도 나가려고 하지 않았던 선거구는 어느새 민주당계열 정당에게 제법 유리한 곳으로 바뀌었다 이쯤되면 이 지역의 공천권을 두고 치열한 경쟁이 일어나야 정상이겠지만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공천 과정에서 이원욱은 제18대에서 자진해서 희생한 점을 인정받아 결국 공천장을 얻었고 본선에서도 2위 후보와 25% 차로 여유 있게 당선됐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화성시 을에 출마했다. 제20대 선거에서는 국민의당 후보에게 일부 표를 뺏겼음에도 50% 이상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재선의원 고지를 밟았다.

 

2016년 9월 6일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에 임명됐다. 2019년 8월 11일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을 연기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2019년 5월 20일 국회 이인영원내지도부에서 원내수석부대표로 임명되어 패스트트랙 공수처법, 검찰개혁법, 유치원 3법 통과를 위해 4+1 협의체에서 실무협상을 담당해 법안을 통과시켰다. 21대 총선에서 64.5% 득표율로 21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20년 8월 15일 전광훈 목사의 광화문 집회사건으로 이후 확진자가 급증하자 8월 21일 전광훈 목사에게 집회를 허락한 판사의 실명을 딴 일명 '박형순 금지법' 법안을 발의하게 된다. 2022년 대선 직후, 콘클라베 형식으로 진행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에 출마해 4위 안에 들었다. 김종민, 윤영찬, 조응천 의원과 함께 '원칙과 상식'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이재명 대표와 친명계에 항의하는 공동행동에 나설 것을 예고했지만 이미 본인들부터가 이재명 대표와 친명계에게 완전한 손절을 당한 건 물론, 대다수의 의원들도 대체적으로 이들의 행보에 무관심한 편이다.

 

이원욱 61년생 호랑이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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